“비트코인을 다시 위대하게”, 미국 대선 흔드는 크립토 정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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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칼럼] 100만 개 매입해 전략 비축물로? 죽을 때까지 팔지 말라는 트럼프의 호객 행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사용자가 2008년 “비트코인: 피어 투 피어 전자 현금 시스템”이라는 글을 온라인 게시판에 포스팅하고 이듬해 첫 발굴이 시작된 뒤에도 비트코인은 한동안 첨단 기술에 능통한 소수의 괴짜들이나 관심을 갖는 기이한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그림1] 상위 10대 기업, 비트코인, 삼성전자 시가총액. (시점: 8월9일, 단위: 조달러, 출처: YChart 등)

하지만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과 다양한 암호자산을 투자 대상의 하나로 인식하게 됐다. 시가총액(8월9일 기준) 상위 기업들과 비교하면 비트코인은 1.2조 달러로 세계를 통틀어 이보다 더 큰 기업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단 7개 밖에 없다. 한국 최대 기업 삼성전자의 네 배에 달한다. 또한 올해 1월 비트코인 현물 ETF가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메인스트림 언론과 금융기관도 외면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마침내 미국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이슈로까지 부상했다.

비트코인 컨퍼런스에 참석한 트럼프.

[그림2, 비트코인 컨퍼런스에 도널드 트럼프가 기조연설자로 참석했다. 출처: 비트코인 컨퍼런스 X]

비트코인 컨퍼런스가 지난 7월 25~27일 미국 내쉬빌에서 열렸다. 2021년 이래 크립토 업계의 중요 행사였지만 올해는 특별히 많은 주목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조 연설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상하원 의원도 여러 명이 참석하였다. 무소속 대통령 후보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도 연설했고, 컨퍼런스 며칠 전 사실상의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커밀라 해리스가 참석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비트코인 커뮤니티 내에서는 컨퍼런스에 모든 미국 대선 후보가 모이는 깜짝 쇼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확산되었다(해리스는 참석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기조 연설에서 더할 나위 없이 적극적으로 크립토 투자자들에게 구애하였다. ‘비트코인은 백년전 철강 산업만큼 중요하며, 비트코이너들은 발명왕 에디슨,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 철강왕 카네기, 자동차 왕 포드와 같은 인물들’이라고 치켜세웠다. 트럼프는 추상적인 말에 그치지 않고, 투자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정책 약속도 제시하였다.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물로!

트럼프는 청중들에게 ‘비트코인을 절대로 팔지 말라’고 가격 상승의 기대감을 높이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비트코인을 전략적 국가 비축물(strategic national stockfile)로 보유하고 매각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략 비축물이 원유, 희토류 등과 같은 전략 물자인지, 아니면 금과 같은 준비금(reserve)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호들(HODL: Hold on for Dear Life, 죽을 때까지 팔지 않고 버티겠다는 코인 업계 은어)’이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미국 정부는 현재 불법 행위자들로부터 몰수한 비트코인 약 21만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현재 가치로 대략 130억 달러). 그간 미국 정부는 몰수한 비트코인을 지속적으로 매각해왔는데, 이를 매각하지 않으면 가격 하락 압력이 줄어들 것이다.

상원의원 신시아 러미스(와이오밍, 공화당)는 이 아이디어를 이어받아 비트코인 100만개를 매입하여 금과 마찬가지로 전략적 준비금으로 비축하는 법안을 발의하였다(Boosting Innovation, Technology and Competitiveness through Optimized Investment Nationwide Act, 단어의 앞 글자만 따면 ‘BITCOIN’ 법이 된다).

러미스 의원의 법안은 미국 중앙은행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빠른 시기에 통과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가 약속한 ‘정부가 기존에 보유한 비트코인의 매각 중단’은 법 개정 없이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실현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그림 3] 비트코인 준비금 법안을 발의한 신시아 러미스, 출처: 비트코인 매거진.

취임 첫 날 증권거래위원장 해고”, 터져 나온 박수.

연설의 절정은 트럼프가 ‘취임 첫 날 증권거래위원장 게리 겐슬러를 해고하겠다’고 약속할 때였다. 청중은 기립해서 환호성을 지르며 환영하였다. 겐슬러는 골드만삭스 최연소 파트너 출신으로 1997년 재무부에서 금융 규제를 담당한 이래 민주당 정부에서 상품선물위원장(2009~2014)과 증권거래위원장(2021~)을 도맡아 하는 금융 규제의 거물이다.

진보적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민주당)의 지원을 받는 겐슬러는 크립토 자산을 기본적으로 ‘증권’이라고 본다. 주식이나 채권과 마찬가지로 규제를 받아야 하고 그 책임은 증권거래위원회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크립토 업계가 증권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여러 건의 소송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 최대 코인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와 바이낸스가 증권 등록을 하지 않고 코인을 거래했다는 혐의로 재판까지 끌고 갔고, 리플랩스가 발행한 리플을 불법 증권으로 규정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업계는 크립토 자산은 주식이나 채권과는 전혀 다른 신기술의 산물이기 때문에 증권법의 적용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새로운 규제 법률을 채택하거나 최소한 상품 거래에 준하여 규제할 것을 요구해 왔다. 겐슬러는 심지어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봉쇄하려고 시도하다 법원의 판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ETF 상장을 승인하면서도 적대감을 감추지 않은 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는 취임과 함께 크립토 커뮤니티 공적 1호인 겐슬러를 해고할 수 있을까? 미국 증권법은 위원장을 포함하여 증권거래위원은 상원의 동의를 통해 대통령이 임명하고 5년간의 임기를 보장한다고 정하고 있다. 따라서 겐슬러의 의지에 반해서 해고할 수는 없다. 다만 미국에서 증권거래위원장은 다른 정당의 대통령이 취임할 경우 잔여 임기와 무관하게 사퇴해온 오랜 관행이 있다. 트럼프가 당선 후 공개적으로 물러나라고 요구할 때 겐슬러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해리스는 줄 안 서나.

트럼프가 바이든 정부가 크립토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크립토 커뮤니티에 적극적인 구애 활동을 해 나가는 와중에 민주당 후보가 해리스로 바뀌면서 민주당 내에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다. 상원의원 커스틴 질리브랜드(뉴욕, 민주당)와 하원의원 로 카나(캘리포니아, 민주당) 등이 크립토 친화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질리브랜드는 크립토 자산을 증권이 아닌 것으로 규정하여 증권거래위원회가 아닌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감독을 받도록 하는 법안을 공화당 러미스 상원의원과 함께 발의하여 업계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The 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 카나는 비트코인 컨퍼런스에 민주당 의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하여 공화당 일색이 되는 것을 겨우 막았다.

해리스 캠프 인물들이 업계 인사들과 접촉을 갖고 정치인과 업계 인사로  ‘해리스를 지지하는 크립토 모임(Crypto for Harris)’을 구성하여 활동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다만 해리스가 적극적으로 크립토 규제 철폐로 나아갈지 여부는 불문명하다. 주요 지지 기반인 진보 진영의 엘리자베스 워런 등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크립토 파워? 많아 봐야 7% 뿐.

민주당만 변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재선에 도전하던 2019년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는 가치가 불안정하고 실체가 없으며 화폐가 아니고, 마약 등 불법활동에 쓰일 위험이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규제를 옹호했던 것에서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미국 정치권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크립토 구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권자 규모이지만 크립토 커뮤니티가 얼마나되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업계의 한 기관(security.org)은 미국 성인의 40%가 크립토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추정을 제시하였다. 반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크립토 자산을 보유하거나 사용한 인구를 다 합쳐도 2023년 7%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2021년(12%)에 비해서 오히려 줄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 모든 크립토 투자자가 이 이슈를 기준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히려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이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불과 몇 달 만에 2500만 달러 이상의 크립토 자산 기부가 쏟아졌다고 자랑한 바 있다. 크립토 업계는 올해 대통령 및 의원 선거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림4] 윙클보스 형제가 트럼프 기부와 지지를 선언하는 모습, 출처: 타일러 윙클보스 X.

미국 정치 자금에서 가장 중요한 기구인 수퍼정치활동위원회(Super PAC) 중 1위는 페어쉐이크로 총 2억290만 달러를 모금하였다. 페워쉐이크의 주요 기부자는 크립토 기업 코인베이스(4550만달러), 리플(4500만달러), 점프 크립토(1000만달러) 등과 업계의 거물들인 벤처 캐피털리스트 앤더슨 호로위츠(4400만 달러)와 윙클보스 형제(500만 달러) 등이다.

표가 아니라 자본, 무시할 수 없는 크립토 파워.

크립토 업계는 이번 미국 선거에 사생결단으로 달려들고 있다. 트럼프와 공화당 후보 지원을 중심에 두면서도 민주당을 친-크립토 진영으로 견인하는 전략도 동시에 구사 중이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크립토 커뮤니티의 바람대로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이 분명하다. 또 해리스가 당선되더라도 미국 정계의 모습을 보면 현재의 강한 규제는 일정 정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를 거치면서 크립토의 사회적 수용성은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이고, 선거 이후 크립토의 지위는 달라질 것이다.

필자 주.

이 글은 크립토 자산에 대한 투자를 권하거나 억제할 목적 없이 작성됐다. 필자는 일체의 크립토자산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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