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리스의 약진
여론조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오지만 해리스가 지지율에서 트럼프를 약간 앞서고 있을 뿐 아니라 차이를 벌리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아직 결과를 알 수는 없으나 불과 45일 전 바이든이 TV 토론에서 참패한 이래 민주당의 승리 가능성이 곤두박칠쳤던 것을 고려하면 상전벽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자신의 돈을 걸고 대통령 당선 결과를 맞추는 정치 예측 플랫폼에서도 8월 8일 이후 해리스의 당선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한 베팅이 이루어지고 있다(참고: 정치 예측 시장에 관한 8월 5일 자 슬로우뉴스 기사).
2. 경제에 유능한 대통령은?
바이든 캠프와 친 민주당 인사들의 소셜 미디어 포스팅에서 반색한 여론조사 결과가 파이낸셜 타임스(8월11일)에서 나왔다. 해리스가 트럼프보다 더 경제를 잘 관리할 것이라는 답변이 조금 더 많았다.
물론 이것은 많은 여론 조사 중 하나의 결과일 뿐이고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여전히 트럼프가 해리스에 비해 경제를 더 잘 운영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폭스 뉴스의 조사에서도 그 격차는 줄고 있다.
경제 이슈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꼽은 가장 중요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이 큰 폭으로 트럼프에 뒤졌던 것을 고려하면 해리스 팀으로서는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3. 해리스의 카드
해리스는 바이든 사퇴 이후 정책 발언은 최소화하고 바이든의 노쇠한 이미지를 젊고 신선한 이미지로 바꾸는 데 집중하였다. 그리고 16일 대중 연설을 통해 경제 정책 개요를 밝혔다. 생애 첫 주택 마련 지원금 25,000달러 지급 및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조세 지원, 출산 세액공제 6,000달러, 노동자들의 팁 소득에 대한 면세 등의 정책은 늘 그렇듯 정책 효과와 재정 부담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일 것이다.
하지만 이날 언론이 주목한 것은 따로 있었다. 해리스는 ‘취임 후 물가 하락을 최우선 과제로 하고, 불법적인 바가지요금(price gouging)과 부당한 월세 인상에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하고, 연방거래위원회와 검찰이 바가지요금을 매긴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최초의 연방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4. 인플레이션의 문제
미국 대선에서 경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면, 이번 선거는 그중에서도 인플레이션이 핵심 이슈라고 할 수 있다. 2021년부터 치솟기 시작한 물가는 순식간에 7~8%대를 넘나들었다. 이는 1980년대 초반 이후 최초의 일이라 40세 이하 인구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이었다. 특히 임기 중 물가상승률 평균값은 트럼프 정부 1.9%와 바이든 정부 5.2%로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바이든 정부의 가장 아픈 고리가 되었다.
지난 7월 물가상승률이 2.9%로 2021년 3월 이후 처음 3% 아래로 내려오면서 안정되어 가는 모습이지만 이미 오른 물가는 속절없이 소비자들(즉 유권자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임기별 누적 물가상승률을 보면 트럼프 정부에서 4년 동안 7.3% 오른 반면, 바이든 정부에서는 3년 7개월 동안 20% 넘게 올랐다. 식품(Food and Beverage)으로 한정하면 이보다도 더 높았다.
5. 반응
트럼프는 해리스를 ‘완전한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며, ‘조국을 파괴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재앙을 일으키더니 사회주의적 가격 통제를 도입하려 한다’고 맹비난했다. 밴스는 ‘해리스에게 인플레이션을 맡기는 것은 제프리 엡스틴(억만장자 금융가로 수십 명의 소녀들을 인신매매하고 성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복역 중 자살하였다)에게 인신매매 정책을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난하였다.
언론도 가만있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사설에서 해리스의 인플레이션 해결책은 ‘베네수엘라식 좌파 포퓰리즘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고 ‘식품 가격통제는 모스크바에서 카라카스까지 언제나 공급부족과 품귀현상으로 이어졌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을 더 곤혹스럽게 한 것은 리버럴 언론도 이 정책에 대해서만큼은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캐서린 램펠은 칼럼에서 ‘해리스 정책은 워싱턴의 관료들에게 가격과 이윤 수준 결정권을 주는 최악의 법’이라고 규정하고, ‘공화당 후보가 엉터리 경제정책을 쏟아내는 와중에 민주당마저 똑같이 할 거냐’라고 한숨을 내쉬면서 철회를 요구했다.
6. 기업의 탐욕과 인플레이션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한창인 치솟기 시작한 2021년부터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강조하기 위해 바이든플레이션(Bidenflation)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공격했다. 민주당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라는 푸틴 인플레이션(Putin Price Hike)과 기업의 탐욕을 문제 삼는 탐욕 인플레이션(greedflation)을 내세워 엄호에 나섰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으로 기업의 폭리, 바가지요금을 들고 있다. 이것은 몇 년간 변화하지 않는 추세이다.
반면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2022년 미국 경제학자 패널 조사를 보면,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통해 이윤을 높인 것이 인플레이션의 주원인’이라는 주장(좌)과 ‘예외적인 시장 충격이 있을 경우 대기업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을 불법으로 하면 미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우) 모두에 대해 반대가 찬성을 압도했다.
7. 승부수 또는 해프닝
결국 이제 막 역전의 기틀을 마련한 해리스는 가장 약한 고리인 인플레이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돌파하기 위해 가격 통제라는 강수를 들고나온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트럼프의 ‘모든 수입품에 대한 최소 10% 관세 부과’와 해리스의 ‘식품 가격 통제’에 대해 어떤 정책이 더 나쁜 정책일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해리스가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밝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정책을 더 키우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는 해리스는 트럼프와는 달리 당선되더라도 이 공약을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경제적 부작용과 별도로 이 정책이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미국 정부가 가격 통제를 시도하다 부작용만 잔뜩 낳고 실패한 마지막 사례는 리처드 닉슨 때 있었다. 트럼프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고, 민주당에 우호적인 언론과 경제학자들도 반대하고, 여차하면 유권자들에게 호감도가 매우 낮은 닉슨만 상기시킬 정치적 위험도 매우 높은 정책이다. 아마도 많은 전문가가 가격 통제 정책이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