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 칼럼] 파월 연준의장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고, 노동 시장 부양 위한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민주당은 한숨을 돌렸고, 트럼프는 반대하며 파월을 회유(?)하려 한다.
1. 연준의 승리 선언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8월 23일 인플레이션에 대한 승리를 선언했다. 무대는 ‘잭슨 홀 미팅’(Jackson Hole Meeting)이라 불리는 와이오밍주 그랜드 테튼 국립공원 내 휴양지에서 개최된 연례 경제 심포지엄이었고, 관객은 연준과 각국 중앙은행의 주요 인사들, 취재차 달려온 기자들 그리고 생방송으로 지켜본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었다.
파월의 이날 메시지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 연준이 정책을 조정할 시기가 도래했다: 2022년 3월부터 2023년 7월까지 급격하게 5.25%포인트 인상한 후 지금까지 유지해 오던 금리 인상 사이클을 인하 사이클로 바꿀 때다.
- 연준의 이중 임무의 추가 바뀌었다: 연준은 법률에 따라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 두 가지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데, 그간 인플레이션 위험이 더 컸다면 지금부터는 실업의 위험이 더 중요한 시기다. 그러니 이자율 내릴 것이다.
- 노동 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인하의 시기와 규모는 향후 데이터를 보고 결정할 것이나 필요하다면 9월에 예상보다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인하할 수도 있다.
이 메시지는 사실 시장의 예측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연준 의장이 평소와 달리 매우 분명한 톤(무엇이든 할 것이다!)으로 발표한 것은 꽤 이례적이어서 시장은 환호했다. 미국 주식 3대 지수인 다우, S&P500, 나스닥 지수는 모두 1% 이상 올랐고, 미국 국채 수익률과 달러 인덱스는 급락했다. 그 여파로 달러-원화 환율도 1320원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2. 한숨 돌린 민주당
그간 민주당은 바이든 정부가 팬더믹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미국 경제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성장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에 따른 유권자의 불만 앞에서 전전긍긍했다. 민주당 후보 본인이나 대선 캠프는 연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오해를 피하고자 발언은 삼가면서 조심스러운 행보였지만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은 금리 인하에 소극적인 연준과 파월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고 금리인하를 압박하기도 하였다.
금융 분야에서 민주당 진보파를 리드하고 있는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은 연준이 가파르게 금리 인상을 착수한 초기부터 월스트리트 저널 칼럼(2022년 7월 25일)을 통해 “연준의 공세적인 금리 인상이 심각한 경기침체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고 지속적으로 금리 인하를 촉구해 왔다. 최근에도 상원의원 재키 로젠(네바다), 존 히켄루퍼(콜로라도) 등과 함께 ‘연준의 금리 정책이 의도와 정반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비난하며 당장 금리를 인하하라는 공개서한(6월10일)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연준의장으로부터 기대하던 메시지가 나오자 민주당은 안도하는 모습이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인 재러드 번스타인은 한국경제신문의 의견 요청에 대해 “노동자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물가상승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파월 의장이 확인해 준 것”이라면서 반색하였다.
3. 트럼프와 연준의 해묵은 갈등
트럼프는 민주당과 반대로 선거 이전 연준의 금리 인하를 분명하게 반대하였다. 트럼프는 불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7월16일)에서 “연준은 대선 전에 금리 인하를 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것을 자신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하지만 또 다른 인터뷰(7월31일, 전미흑인언론인협회)에서 자신은 취임 후 저금리 정책을 취하겠다고 하여, 금리 결정을 매우 정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었다.
트럼프가 선거와 관련하여 연준을 비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CNBC와 인터뷰(2016년 9월12일)를 하면서, 옐런이 자신을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 ‘오바마 대통령의 업적을 빛나게 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며 옐런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옐런의 임기가 만료되자 연임 관행에도 불구하고 옐런이 아닌 제롬 파월 당시 연준 이사를 의장으로 임명하였다(파월은 당파성이 강한 인물은 아니나 공화당원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와 파월과의 관계는 순탄하지 않았다. 파월이 2018년 의장으로 취임한 후 1년 동안 금리를 네 번 인상하고 이 영향으로 주가가 약세를 보이자 트럼프가 파월 해고를 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2018년12월22일)하였다. 당시 트럼프와 백악관이 이 기사에 공식 논평을 하지 않아 대체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파월은 2022년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연임되었고, 다시 한번 대선 정국을 맞이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번에는 ‘파월이 일을 제대로 하면 임기를 보장해 주겠다’고 회유(?)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트럼프가 연준 의장을 해고할 수 있다는 판단에 기반한 것이다.
4. 연준 공격의 배경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광범위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 사이에서 연준의 신뢰와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퓨 리서치 여론조사(7월1~7일)에 의하면 연준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45%로 다른 연방정부 기관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정당 지지도에 따라 보면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긍정 평가가 57%로 부정 평가 19%보다 훨씬 높았지만, 공화당 지지자들은 부정 평가(44%)가 긍정 평가(35%)보다 더 높았다.
5. 대통령은 연준 의장을 해고할 수 있을까?
중앙은행 총재 및 지도부의 임기 보장은 중앙은행 독립성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미국 ‘연준법’은 의장뿐 아니라 부의장과 이사 모두에 관하여 임기를 보장하고, 사유가 있을 때만 해임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규정(제10조 제2항)하고 있다. 이때 사유는 통상적으로 정책적 이견이 아니라 위법 행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임기가 보장된 공직자를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해고하는 경우 자체가 극히 드물고, 판례도 이러한 원칙을 존중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연준 의장과 마찬가지로 임기가 보장되는 증권거래위원장 게리 겐슬러를 취임 즉시 해고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선거 운동 과정에서 해보는 말 이상일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파월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할지, 파월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고 버틸지, 트럼프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해고까지 할지, 그 경우 파월이 법원의 심판을 요구할지 많은 것이 불분명하다. 하지만 연준 리더쉽을 둘러싸고 전례 없는 내홍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