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3년 7월 22일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던 글이다. 저자들의 노벨상 수상에 맞춰 여기에 다시 올린다.
권력과 진보 (Power and Progress by Daron Acemoglu and Simon Johnson, PublicAffairs, 2022. 한국어판은 김승진 번역으로 생각의힘 에서 2023년 출간.)
모든 훌륭한 경제학자는, 애덤 스미스와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경제학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애스모글루는 보여준다.
천년에 걸친 동서고금의 기술 발전과 경제적 번영의 관계를 살피고 미래에 대한 예상과 대응 방안까지 나오기 때문에, 개별 이슈별로 보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들의 분석과 주장 하나하나에 다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총체적으로는 수긍하고 공감하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저자들의 역사관은 ‘미래는 열려있다’는 것이다. 단선적 역사라든지, 기술과 경제의 필연적 발전 방향이라든지, 역사의 법칙이라든지 이런 것을 경계한다. 과거에 살던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오늘을 만들었듯, 우리가 오늘 내리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선택의 결과로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무엇이 옳은 방향인가를 결정할 때 중요한 요인은 ‘비전’이다. 이 비젼은 사업에 성공한 사람, 금융인, 저명한 학자들로부터 나온다.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 학사원이, 최근에는 엘리트 비즈니스 스쿨과 로 스쿨의 학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 비전이 권력과 네트워크에 의해 크게 영향받기 때문에 비전 과두 권력이 결성된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중요한데 민주주의만큼이나 취약하다.
번역은 매우 뛰어나다. 번역하기 매우 어려웠을텐데, 원서 출간과 거의 동시에 완벽하게 번역된 한국어 판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통상 이런 책을 읽으면 어색하거나 잘못된 번역을 여럿 발견하게 되는데, 이 책은 아주 자연스럽고 오역을 찾기 어렵다. 이 두꺼운 책에서 딱 하나 사소한 실수를 발견했다. “라이어스 포커는 … 취지에서 쓰인 소설(p.115)”에서 소설은 그냥 ‘책’으로 바꿔야 한다. 넌픽션이다.
번역 얘기 조금 더 하면 김승진이라는 분이 매우 뛰어난 번역가임에 분명하고, 생각의힘도 번역의 질에 매우 신경을 쓰는 출판사다. 예전에 이 출판사로부터 감수를 위해 번역 초고를 받고 ‘퀄리티에 문제가 있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출판사는 고민 끝에 초고 자체를 아예 폐기하고 새로 번역을 맡겼다.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드는 일인데도 감행해서 좀 놀랐던 기억이 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사람의 권위에 세상이 영향받는다는 것을 저자들은 우려하는데, 사실 이 책에 대한 반응도 그런 측면이 있다. 만약 이 책이 애스모글루가 쓴 것이 아니라면 ‘너무 진보적’이라고 비판했을 사람들도 이구동성 이 책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나는 애스모글루의 책을 총 세권 읽었는데, 여전히 최고의 작품은 <좁은 회랑>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도 충분히 좋다. 게다가 이 책은 가독성도 아주 높아서 벽돌책이지만 술술 읽을 수 있다. 많은 분들이, 특히 이코노미스들이 읽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