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은 안으로 굽었다: 숫자로 확인한 NYT와 WSJ의 당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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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칼럼] 언론사의 당파성에 따라 기업 기사도 달라질까? 100대 기업을 다룬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의 1991년부터 2016년 기사 전수조사 결과는?

같은 사건을 다룬 전혀 다른 두 건의 기사가 있다.

첫 번째 기사: “아마존, 막대한 이윤을 내며 진격”.


2020년 4사분기 아마존 실적 발표를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이다. 매출이 874억 달러로 전년 대비 21% 늘었고, 사용자 증가도 역대 최대였다. 주당순이익이 6.47달러로 시장 컨세서스 4.04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두 번째 기사: “아마존 1조 달러 이정표 놓쳐”.


같은 이슈를 다룬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제목이다. 주가가 급등해 장중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넘었지만 막판에 매물이 쏟아져 종가 기준 9999억 달러로 1조 달러 클럽 합류에 실패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만 이 기준을 넘었고, 아마존과 알파벳(구글)이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정치적 성향과 논조.


결국 두 신문 모두 보도할 가치가 있는 내용을 제목으로 삼았지만 분위기는 꽤 달랐다.

인디애나대와 미시간주립대의 금융경제학자들은 이 현상을 무심코 지나가지 않았다. 혹시 신문사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연구를 수행해 ‘저널 오브 파이낸셜 이코노믹스’에 발표했다.

언론의 정치적 성향이 정치 기사나 선거 기사, 세금과 예산, 규제, 복지 등 경제와 정책 기사에 드러날 수 있다. 그런데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 기사는 어떨까.

100대 기업 전수 조사 결과.


이들은 1991년부터 2016년 사이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을 다룬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전수조사했다. 미국 기업들의 정치자금 기부 내역과 두 신문의 논조 차이를 비교했더니 공화당 기부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월스트리트저널 기사가 뉴욕타임스 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긍정적 논조로 작성됐다.

  • 뉴욕타임스의 경우 민주당 ‘큰손’(기부금 납부 상위 20%) 기업에 관한 긍정적인 보도 비율이 45%였는데 공화당 ‘큰손’ 기업에 관해서는 39%에 지나지 않았다.
  • 월스트리트저널은 반대로 공화당 ‘큰손’ 기업(52%)이 민주당 ‘큰손’ 기업(45%)보다 많았다.
  • 월스트리트저널이 공화당에 기부한 기업을 다룰 때 긍정적인 단어를 15% 더 많이 썼다.
  • 월스트리트저널은 뉴욕타임스와 비교해서 공화당 기부 기업에 관한 긍정적인 뉴스 비율이 20% 더 많았다.
  • 두 신문 모두 정치적인 견해가 일치하는 기업들 다룰 때 좀 더 기사 분량이 길었다.

미국은 기업과 노조가 정당이나 후보에게 직접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지만 선거 광고의 주요한 원천인 슈퍼 PAC(정치행동위원회, Political Action Committee) 기부가 허용돼 있다. 이를테면 아마존은 2020년 기부금의 85%를 민주당에 쏟아부을 만큼 친민주당 성향 기업이었다.

언론의 논조가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가.


두 신문의 논조의 차이가 거래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살펴봤는데 두 신문의 논조가 엇갈릴 때 비정상적인 거래량 증가가 30% 이상이었다.

흔히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 사이에 평가가 엇갈릴 때 거래량이 늘어난다. 뉴욕타임스를 보는 투자자들과 월스트리트저널을 보는 투자자들 사이에 전혀 다른 정보가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어떨까.


이러한 결론은 기업이 집행한 광고비 차이와 무관하고 심지어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성향과도 무관했다. (기자의 이력까지 추적했다).

저자 중 한 명인 라이언 이스라엘슨(미시간주립대 교수)는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언론의 정치적 성향이 기업 기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실제로 투자에 반영될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는데 데이터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떨까. 기업의 정치 기부금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기 때문에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분석을 수행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도 매체별 정치적 성향의 격차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고려해 정파성과 논조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이 글에서 소개한 연구는 Political Polarization in Financial News (Eitan Goldman, Nandini Gupta and Ryan Israelsen, Journal of Financial Economics, 2024, 구독자 제한)이다. 공개된 이전 버전은 SSRN에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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